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악바르 대제 (문단 편집) ===== 아프가니스탄 원정 ===== 구자라트와 벵골까지 무굴 제국의 영토로 편입시키며 북인도 전부를 먹어치운 악바르도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던지 1581년까지는 더이상의 군사 원정을 중지하고 파테푸르 시크리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1581년에 그의 형제이자 카불의 군주였던 미르자 무함마드 하킴이 [[펀자브]] 일대를 침공하자 악바르는 다시 원정에 나선다. 이전에도 우즈베크인들의 사주를 받아 자신의 제위를 노린 전적이 있던 무함마드 하킴이었기 때문에 악바르도 더이상은 그를 좌시할 수 없었고 결국 아예 싹을 잘라버리기로 결심한 것. 그러나 정작 하킴의 본거지인 카불로 가려드니 문제가 터졌다. 무굴 장군들이 추운 카불까지 굳이 진군하기를 싫어했고, 병사들은 미신 때문에 [[인더스 강]]을 건너가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악바르가 8개월 치 급료를 미리 지불하고 나서야 겨우 군대를 움직일 수 있었다. 1581년 8월에 악바르는 가볍게 카불을 함락했고 바부르의 영전에 참배한 뒤 3주 정도 머무르다가 돌아왔다. 정작 원정의 단초를 제공한 미르자 무함마드 하킴은 무굴 대군이 접근하자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산맥으로 달아나버렸다고. 이후 악바르는 그의 누이인 바크트-운-니사 베굼에게 카불을 맡긴 뒤 다시 인도로 돌아왔다. 악바르가 떠나자 미르자 무함마드 하킴이 다시 카불로 돌아왔고, 악바르는 그의 죄를 사해준 다음 실질적인 카불의 통치는 그에게 맡겼으나 명목상 카불 총독직은 여전히 바크트-운-니사 베굼에게 남겨두었다. 그렇게 형제의 반란을 꺾었지만 악바르는 함부로 북인도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너머 옛적 바부르가 쫒아낸 우즈베크인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남하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즈베크인들은 압둘라 칸 샤이바니드 아래 하나의 세력으로 모여 거대한 규모의 대군을 이루었고, 결국 무굴 제국에 위협이 될 정도의 군세를 모았다. 악바르는 이들의 기습을 방지하기 위해 1585년부터 약 15년에 걸친 긴 기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북인도에 머물며 제국의 북부 국경을 강화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의 수많은 부족들 중 무굴 제국을 적대하는 부족들도 많았고, 워낙에 민족 구성이 복잡해서 하나의 단일한 세력 하에 뭉쳐 있던 것이 아니었던 터라 이들 모두를 따로따로 상대해야만 했던 악바르의 고충은 어마어마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586년에 악바르는 우즈베크의 지도자 압둘라 칸과 협상을 맺었다. 협상의 내용은 대강 압둘라 칸의 군대가 [[사파비 왕조]]를 공격할 때 무굴 제국이 중립을 유지해주는 대신, 압둘라 칸이 무굴 제국에 적대적인 아프간 부족들에게 지원을 하지 않고 우즈베크인들을 국경 너머로 물린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압둘라 칸이 개입할 가능성을 없애버린 악바르는 협상이 끝나고 마음놓고 적대적인 부족들을 쓸어버릴 수 있었다. 악바르는 후환을 남겨두지 않기 위해 정말 철저하게 아프가니스탄을 청소했고, 수많은 요새들을 지어 부족들을 감시했다. 특히 개중에서도 반발이 강했던 유슈프자이 부족의 경우에는 몇 년에 걸쳐 산맥 안쪽에 가두어놓고 물자를 끊어 항복하지 않고선 배기지 못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악바르는 수 백개에 달하는 아프간 부족들로부터도 충성을 얻어냈다. 악바르가 압둘라 칸과 협상을 맺어 국경선을 확립하긴 했지만 악바르는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중앙아시아 지방을 정복해 옛 티무르 제국의 강역을 복원한다는 꿈을 버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중앙아시아의 부족들이 반-무굴 동맹을 구축해 똘똘 뭉쳐있었기 때문에 악바르의 끈질긴 시도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는 못했고, 후대 황제인 [[샤 자한]]이 17세기 중반에 잠깐 중앙아시아를 정복한 적은 있었지만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잃었다. 다만 악바르가 무굴 제국의 북부 국경에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제국의 북부 국경 하나만큼은 확실히 안전이 보장되었다. 마치 [[중국]] 북부에서 [[흉노족]]이 넘어오듯이 당시 인도에서도 북부의 산악 민족이 내려오는 것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 황제가 직접 대군을 거느리고 주둔하다보니 더이상의 침략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1601년에 우즈베크인들의 구심이었던 압둘라 칸이 죽고 우즈베크인들이 사분오열되자 제국 북부에 악바르를 위협할만한 세력은 모조리 사라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